[위협적이거나 압도하는 대상 앞에서 겁을 먹거나 기를 펴지 못하다]
이것을 의미하는 속된 표현의 두 글자가 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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바로 [졸다]입니다. 그런데 우리에게는 [쫄다]로 더 친숙하지요? [쫄다]는 아직 표준어로 대접을 못 받아 사전엔 없고요. 겁먹다의 경상도의 방언으로 되어 있습니다.
얼마 전 한 분과 대화를 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.
[전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러시아에게 쫄지 않는 모습이 힐링이 돼요. 괜찮지 않은 상황, 괜찮을 수 없는 상황에서 겁먹지 않고 싶어요. 나도 그렇게 쫄지 않고 싶어요.]
여러분은 어떠십니까? 우크라이나를 지키기 위해 그 땅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 용기있는 국민들의 모습을 통해 힐링까지 얻는 그 마음이, 저도 이해가 가는 것 같습니다.
– 겁먹지 마세요.
– 당신의 꿈을 확실히 펼치세요.
– 죽기야 하겠습니까?
– 일단 저지르면 수습할 힘이 생깁니다.
– 아니면 다시 하면 되지요 뭐..
맞습니다. 위의 말들을 한 마디로 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지요?
[여러분 쫄지 마세요]
우린 쫄지 않기 위해 애를 씁니다. 태권도와 권투, 호신술을 배우고, 예쁜 얼굴이 되려고 하고, 스펙을 높여 고답지를 향해가려고 애를 씁니다. 그러나 성도는 알고 있습니다. 모든 것을 내려놓고 쫄지 않을 수 진정한 배짱은 하나님이 내 삶을 책임지신다는 믿음에서만 나온다는 것을 말입니다.
성경 속에 유명한 장면이죠? 다윗은 골리앗에게 쫄지않고 말합니다.
사무엘상 17:45
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
엘리야도 마찬가지입니다.
열왕기상 18:41
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,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.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
말씀을 따를 것인가, 생각을 따를 것인가? 아직 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도 보이지 않는 가뭄에 큰 비의 소리를 외친다면, 다들 그를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. 그러나 엘리야는 “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”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.
하나님과 나만이 알고 있는 약속의 말씀.. 그 믿음이 그들을 쫄지 않게 했습니다. 그리고 나를 쫄지 않게 합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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